[칼럼] 참사 이후가 더 참사 같은 이태원 참사

 

김경미<섀도우캐비넷 대표>

비가 오지 않는 것, 자연현상이다. (비가 오지 않는 일도 정치적인 일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자) 가뭄이 오는 것, 정치적인 일이다. 가뭄이 오면 땅이 마른다. 땅이 마르면 곡식이 마른다. 곡식이 마르면 사람들의 삶이 마른다. 그래서 가뭄은 정치적인 일이다.

가뭄이 왜 발생했고, 이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본 이들은 누구인지, 미연에 방지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찾는 것, 모두 정치적인 일이다. 이 일을 하지 않는 지도자를 우리는 게으르다 무능하다 무책임하다 말하고, 이들이 통치의 자리에 서는 것을 경계한다. 이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으로 우리의 삶이 말라 탈 수 있음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가는 것, 일상적인 일이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길을 걷던 이들 158명이 불시에 사망한 것, 정치적인 일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낼 시스템이 깨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왜 깨어졌는지, 언제부터 깨어졌는지, 복구함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일인지를 묻고 확인하는 것은 정치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지켜내는 일, 이 중요하고 어렵고 그래서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인 일이 정치를 지우라고 하는 이들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로 정치적인 일이 되고 있다.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예방할 수는 없었는지,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대책은 무엇인지 등에 답할 의무를 가진 이들이, 시민들의 질문을 추궁으로 몰고, 슬픔을 정치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우리의 질문을 막는다. 이로 인해 우리의 슬픔이 점점 더 부정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이 되어 간다. 난감하고 막막하다.

이 정치적인 일이 정치를 오용하는 이들로 인해 또한 정치적이 되고 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최근 더탐사·민들레라는 두 신생 매체가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일이 그것이다.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온 존재였는지를 함께 기리는 것,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한 공동체적 결의를 다지기 위한 과정이라면 물론 환영할 일이다. 단,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사안이 있다. 우리의 애도의 과정이 사랑하는 이들을 갑자기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슬픔을 헤아리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두 매체는 실패했다. 희생자 명단 공개 여부가 앞선 이유들로 정치적 쟁점이 된 상황에서, 공개 여부를 유가족들에게 미리 묻지 않았던 것은 무책임한 일이었다. 물어야 하는지 몰랐다면 무능력한 일이고, 앎에도 그 수고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게으른 행동이었다. 두 매체의 유가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튼튼한 근거가 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태원 참사에서 정치를 지우려고 하는 이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참사 이후가 더 참사 같아 당혹스럽다는 친구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이태원 참사에서 정치를 지우려는 자들과 정치를 오용하려는 자들로 인해, 정치가 가장 필요한 시점에 정치가 가장 싫어지고 있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가야 할까 참으로 난감하고 막막하다.

 

저작권자 © 정경시사 FOCU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