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달러 재산 보유자 '빈 살만',  한국재계 총수들 만나 경제협력 논의

 

17일 오후 4시 30분,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속속 도착했다. 이날 새벽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초 삼성그룹이 중심이 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까지 4개 그룹 오너만 만나기로 했는데,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도 뒤늦게 초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저녁 참석 요청을 받은 총수들은 “명색이 20대 그룹 총수인데 하루 전날 부르다니 놀랍다. 그래도 안 갈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K·현대차·한화·현대중공업·CJ·두산·DL그룹의 자산 총액은 1277조원(올 4월 공정위 발표 기준). 빈 살만 왕세자의 추정 재산은 2조달러(약 2688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빈 살만 “수소에너지·방산·네옴시티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협력 기대”

국내 주요 그룹 총수와 빈 살만 왕세자의 차담회는 당초 예상했던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오후 7시쯤 끝났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오후 5시쯤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장관들과 사전 회담을 한 뒤, 오후 6시 10분쯤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롯데호텔 15층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두 번의 검색대를 통과하며 휴대전화도 맡긴 뒤 30층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협력을 요청하는 자리였다”며 “각 참석자에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고 싶은 사업과 그와 관련한 애로사항을 일일이 질문했다”고 말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 자리에서 “비전 2030 실현을 위해 한국 기업과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싶다”며 에너지, 방위산업, 인프라·건설 세 분야를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집권 이후 석유에 의존해온 사우디 경제를 문화·첨단기술·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비전 2030′ 전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소에너지 개발, 탄소 포집 기술,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과 원전 인력 양성에 관심이 많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우디 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협력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또 네옴시티 사업에 여러 기업이 적극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네옴시티는 비전2030의 핵심 프로젝트로, 공식 사업비만 5000억달러(약 671조원)에 달하는 스마트시티 사업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9년 6월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5대 그룹 총수를 만났을 때도 네옴시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최근 에너지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석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의 영향력이 더 막강해진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9년 방한 당시만 해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사장은 각각 빈 살만 왕세자와 개별 면담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단체 회동에 8명의 그룹 총수를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회담 직후인 저녁 7시 30분쯤 롯데호텔을 떠나 전용기 편으로 태국으로 향했다.

◇사우디·한국 기업… 조 단위 MOU 체결

빈 살만 왕세자와 한국 대기업 회장들의 회동에 앞서, 한국과 사우디 양국은 에쓰오일 2단계 석유화학 프로젝트, 네옴 신도시 철도 협력을 포함한 26개 투자 협약(MOU), 계약을 맺었다. 특히 사우디 국영 아람코 자회사인 에쓰오일은 9조2580억원 규모 ‘샤힌(Shaheen·매라는 뜻)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샤힌 프로젝트는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롯데건설과 함께 내년부터 3년여에 걸쳐 울산에 대규모 석유화학 공장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국내 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다. 건설 기간 하루 최대 일자리 1만7000개를 창출하고 울산 지역 건설 업계에 끼치는 효과는 3조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로템은 사우디가 건설 중인 네옴시티 내 총 245㎞에 달하는 철도에 투입될 고속철 480량, 메트로 전동차(지하철) 160량, 전기 기관차 120량 공급을 추진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내년 6월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면 최대 수주 규모는 고속철(2조5000억원), 전동차(4800억원), 기관차(6500억원) 등 총 3조6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삼성물산과 한국전력 등 5사는 사우디국부펀드(PIF)에서 자금을 조달, 그린수소·암모니아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사우디 현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연 120만t 규모 그린수소·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것으로 사업 규모가 65억달러(약 8조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 산유국에 진출, 각종 토목·건설 공사를 수주하며 오일머니를 벌어들인 시기를 말한다. 1973~74년부터 중동에 진출하기 시작한 우리 기업의 중동 지역 수주액은 1981년 127억달러(약 17조원)로 급증했다. 건설 업계에서는 1976년부터 1983년 사이를 중동붐에 힘입은 우리 건설 업계의 확장기로 본다. 8년간 중동 지역 건설 수주액은 607억달러로 이 기간 전체 해외 수주액의 9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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